지끈
"......연우씨, 하 연우씨, 도착했습니다."
"윽...도착한건가요?"
"네, 차는 여기 두고가겠습니다. 약도는 여기 있습니다. 그럼 편안한 요양 되시길"
허, 퍽이나.
잘도 요양 되겠다 빌어먹을 자식아.
이딴 시골에다 집어쳐놓고 요양이나 하라고?
말만 요양이지 조선시대 죄인들이나 가는 귀향이나 다름없는데인데 대체 무슨 요양을 하라는거야?
처음 차에서 내린 광경은 그야말로 집 서너채 이외에는 푸르디 푸른 초록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은 언제 지어졌는지 의심될 정도로 낡아빠진 집이 기분나쁠 정도로 날 반겨줬다.
주변에 먹을 걸 파는 슈퍼 하나만 뺀다면 정말 옛날 5~60년대의 어촌이나 다름 없었다.
집은 구불구불한 철판에다가 우레탄을 잔뜩 뒤집어쓰고 그 위에 빨간 페인트로 범벅을 한 뒤에 연결 된 부분을 표시하는 듯 하얀색 페인트로 다시 덧칠을 해놓았다.
벽은 급하게 시멘트로 덧칠을 해놓았는지 군데군데 갈라진 틈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고 그 틈으로는 옛날부터 지탱하던 흙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여기서 3개월동안 살아야 할 생각을 하니 당장 주치의를 찾아가 얼굴에다가 주먹을 스트레이트로 꽂아버리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괜히 가봤자 내 손만 아프고 오히려 합의금을 물어내야할 것이다.
"일단 짐이나 풀자. 이미 늦었는데 한탄이 뭔 소용이야.."
확실히 이 집에대한 불만은 마음속의 인내치를 벌써 넘치게 하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의 결과에 순응하는 것은 정말 어이없게도 나무와 나무, 그 사이로 넓게 울려퍼지는 매미 소리와 그 아래로 보이는 청량한 바다의 절묘한 아우러짐이 온 몸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럭저럭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짐을 놔두기 위해 집 안에 들어서니 바다를 바로 직시 할 수 있는 마당에는 흑색의 마루에 가슴까지 닿을 정도의 딱딱하고 거무튀튀한 벽담이 있었고 그 뒤로는 일 자로 지어져 중앙의 거실에 양쪽으로 나 있는 두개의 방이 나 있었다.
또 그 방 중 한개의 방은 움푹 들어가 있고 남은 공간에는 밖에 나와서 여럿 사람이 누워 있기에도 적당한 밝은 갈색의 마루에 중앙 거실 바깥과 살짝 연결되어 나온 마루가 다른쪽으로 튀어나온 마루와 이어져 뭔가 딱 맞는 느낌이 들게했다.
나중에 정년퇴직때까지 일을 하고 회사에서 손을 제대로 씻게되면 딱 이런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미리 맛 볼줄은 몰랐다.
물론 겉면은 때려 부숴서라도 고쳐야 되겠지만, 안의 상태는 정말 내가 원하던 그런 집안이였다.
"지금이 몇시더라..."
시간을 보기위해 벽 주위를 둘러보며 시계를 찾아다녔지만 이상하게도 시계 바늘은 커녕 숫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살았길래 시계부터 달력까지 시간을 알 수 있는건 죄다 없는걸까..?
근처의 매점에 가서 사야될 거 같아 가져온 짐을 일단 마루에 놔 두고 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매점에는 영업 종료라는 팻말만 붙어있었다.
-영업 종료- AM:10:00~PM5:00
뭐이리 늦게열고 빨리닫는 엿같은 매점이 다 있어?
이거 완전 지맘대로 여는 수준이잖아?
지끈
.....됐다.
그냥 수면제나 먹고 자야지.
망할 매점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허탈한 기분으로 털털하게 걸어와 움푹 파인 방에서 화풀이로 짐을 난잡하게 풀어내고는 엉망진창이 된 집안에 다시 화가나 제대로 정리하는데에 지쳐버렸다.
갖가지 감정이 섞인 한숨을 아무렇게나 토해내며 이부자리를 두 손으로 감아 마당의 마루에다가 깔아냈다.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짧은 바늘이 1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지금쯤 신입사원들이 싸질러 놓은 프로파일들을 정리하느라 피로회복제를 연거푸 들이키며 키보드나 두들기는 나날이였을텐데...이렇게 뭔가에 쫒기는 일 없이 느긋하게 있어본게 얼마만인지 이제는 가물가물해졌다.
그런 서글픈 느낌에 하늘을 바라보니 온 걸 환영한다는 듯 비처럼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가 밤하늘을 형형색색으로 늘어놓으며 어두운 지면을 달과 함께 비추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만 바라보던 흥미없는 사진을 직접 직시하니 사진작가들의 마음이 와닿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한데 누구라도 이 장면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셔터를 몇번이나 눌러댈 것이다.
보고있자니 신기하게도 중간에 별 한개가 빠른 속도로 오른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은하수를 매끄럽게 타며 지나가고 있었다.
아, 생각났다.고등학교 2학년이 되서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선생님이 들려줄 때였지.
'도시에서는 주변 상가들의 조명빛이나 탁한 공기때문에 별이 어둑어둑하게 잘 안보이지? 나중에 너희들끼리 시골가서 놀러갈 떄 밤에 술만 마시지 말고 밤 하늘 딱 1분간 바라봐라. 도시와는 차원이 다른 별이 보여. 아마 도시의 별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될 거야. 운이 좋다면 인공위성이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어. 그것도 물론 시골 한정이지. 도시에서 볼려면 꿈 깨라. 죽어도 못본다. 보고나서 너희들 소감이 대부분 이럴거야.'
-고요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 순식간에 마음을 가라앉히는게 일품이라고.
저 멀리 사라져가는 인공위성을 보아하니 그동안 맘 속에 썩혀 있었던 격한 감정들이 거짓말처럼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선생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거 같아 감사하고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요양이 끝나고 나면 부모님 다음으로 선생님에게 전화 한 번 해드려야겠네.
"슬슬 졸려오네...일 할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간만에 찾아온 편안함에 수면제 같은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물밀듯이 졸음이 쏠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에 몸을 맞기며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곁에 나비 한마리가 찾아온 것도 모른 채 말이다.
후기)....후기라고 쓰고 한탄이라고 읽습니다.
예전에 쓴거지만 더 수정해버리고 싶어서 좀 더 수정해보았습니다.
아니아니 이게 아니지.
본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건 한 남자의 시골 요양(?)이야기 입니다.
물론 판타지가 첨가되어있는 이야기지요.
재밌어하실지 안하실지는....모르겠습니다.
그저 즐거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미숙하고 투박하고 볼품없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완결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년 1월에 만납시다.
©issess / build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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