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착인가...."
항구에서 기다리기를 1시간, 그곳에서 배를 타서 목적지까지 5시간.기다리다가 지겨워서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리고, 배를 타다가 장시간의 항해때문에 멀미때문에 2시간동안 고생을 하니 죽을맛이였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추천받은 곳으로 갔다해도 아무리 봐도 이건 추천을 잘 못 받은거 같다.굳이 몸을 혹사시켜서 이런데에 왔어야 하는건가 하며 괜스레 마음속으로 후회와 한숨만 내리 쉬고 있었다.
뭐, 지금은 그런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서도..
지끈
장장 6시간동안 갖은 고생을 하고 와서 그런지 항구 바닥의 울긋불긋 쏫아난 돌이고 뭐고 이부자리 하나만 깔고 편하게 눕고 싶었다.
그전에 숙소를 데려다 줄 사람을 만나 목적지까지 가야되는데 20분째 대합실에서 서 있기만 하고 가질 않으니 정말 답답할 지경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곳에 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거의 있지 않아서 그런지 다행이 사람들의 시선같은 건 받지 않아 창피함이나 부담같은건 겪지 않았지만 이런 상상을 하면서 10분이 더 흘러갔다.
기다리는건 문제가 안되지만 문제는 이 대합실의 문 닫는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보이지 않지만 직원들의 가시같은 눈길이 엄청난 기세로 나를 계속 쏘아대고 있는게 나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시계의 분침이 점점 12라는 숫자를 향해 눈금 1칸만을 남겨두고 거의 도달했을 즈음, 드디어 흰 티셔츠에 청색 반바지를 입고 급하게 왔는지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대합실 입구에 들어오고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나를 보자 재빠른 걸음으로 내쪽을 향해 달려왔다.
"하 연우씨 되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이쪽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짐은 이쪽에서 맡아드리겠습니다. 이 섬의 약도는 숙소에 있으니 그곳에서 보시면 됩니다."
오오...고생한 만큼 복이 온다더니, 오면서 생고생 했다고 친절한 분을 데려다 주셨네.
근데 숙소가 얼마나 멀기에 이런 분까지 데리러 오게 하신거지?
지끈
젠장...일단 가보면 알겠지.
차피 여기 놀러온 것도 아니고..
몸 깊숙히서부터 덮쳐오는 기분나쁜 통증을 무시한 채로 날 실러온 차에 탑승했다.
생각해보니 난 여기 놀러온게 아니라 몸에서 잠식하는 이 기분나쁜 독을 빼러 온거지.
병이라 불러야 할까, 정확히는 스트레스성 편두통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5년동안 고질적으로 나를 괴롭히면서 나의 모든 일상 생활에 영향을 끼친 엿같은 병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두통으로 생각했다.
단순히 일-집-일-집이라는 무한의 굴레를 돌고있던 톱니바퀴에서 살짝 기름칠이 부족한 정도였다.
그렇기에 두통약을 물 없이 씹어먹으며 악착같이 일만 하고있었다.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예전부터 알고 있었을것이다.지금 이 두통이 나중에 심각해질 것을, 점점 내 몸을 침식해서 내 정신을 탁하게 할 거라고 알고 있었다.
미래를 알아채고도, 밀린 업무와 귀찮음, 앞에 놓여있는 크나큰 승진과 보상이라는 먼지같은 변명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난 실험용 쥐를 관찰하는 과학자 마냥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보상은 받았다.
부진의 연속에 빠져 부도위기에 빠진 회사를 몇번이나 살려내며 난 회사의 특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댓가는 너무나 처참하고 나를 밑바닥 구렁텅이로 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관리를 받지 않으며 몸을 혹사시키는 모든 것들은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 순리에 따라 실금같은 문제들은 점점 직장생활, 휴식, 수면까지 영역을 넓혀가더니 최종적으로는 내 몸의 모든 기관까지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의사선생님에게 찾아가 바짖가랑이를 붙잡으며 제발 내 몸을 살려달라 하소연을 해댔다.
머리가, 뇌가, 내 머리부터 시작해서 손발끝까지 모든걸 침식하면서 고통으로 바꾸고 있었다.
의사는 얼음장 같이 차가운 감정으로 달래고 진정시킨 뒤 취조를 하는 형사처럼 신상을 물어보았다.
"이름은?"
"하..연우 입니다.."
"이름은 하 연우 씨고... 직업은?"
"그냥 평범한 샐러리맨...입니다"
"취미는.....책읽기 정도인가요?"
"네.....그렇습니다."
"뭐,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거 같고..5년동안 고질적인 편두통이 있으시다구요?"
"네, 이 미칠듯하면서도 지긋지긋한 두통때문에 제 평범한 일상이 처참하게"
"지금 여기서 하소연 해봤자 병이 나아지는건 없습니다.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세요. 그 편이 오히려 두통을 완화시킵니다"
"네..."
정말 매정하고 독한 사람같다.
사람의 감정이란게 이렇게나 차갑고 냉정할 수가 있는지 의문까지 갈 정도였다.
의사란 직업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지라 언제나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을 해야하는건 맞지만 환자의 하소연 정도마저 들어주면 어디 덧난단 말인가.
어린 아이처럼 울고싶다.
기댈곳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조차도 그저 겉치레로만 연민의 눈길을 보낼 뿐, 딱히 다른건 해주지 않았다.
그런 내게 지금 필요했던건 아픔을 내뱉으며 공유해줄 누군가였다.
하지만, 독신으로 살아가며 연애의 '연'자조차 인연이 없던 나에게는 집에 갈때마다 차가운 공기와 새로 산 가구들에서 나는 포름알데히드 냄새만이 날 반겨주었다.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면서 만들어진 진료실을 지배하던 고통의 정적은 의사의 말 한마디로 쉽게 깨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건 요양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요양..말인가요?"
"3개월, 딱 그만큼만 일과 직장에서 멀어져 보시죠."
"갈 데가 있을까요.....일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라 그런지 아는게 없어서 말입니다.."
"인생을 일로만으로 다니며 허투루 보내지 마세요. 자기 자신을 좀먹습니다."
"요양하고도 일만 할 거 같습니다만?"
신경질이 나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 말투를 내뱉었다.
하고도 좀 당황했지만, 이내 속으로 합리화를 하면서 아까의 행동을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사의 표정은 무덤덤하기 그지 없었다.
"인연을 찾으셔야죠. 앞으로 같이 살아갈, 동반자를 말입니다"
"인연......이라..."
"요양이라면 제가 한 곳 추천해드리죠. 예전 제 고향이였던 곳인데, 집만 있는 곳이라 가져도 상관없습니다."
"하아.....그러죠 뭐.."
그래도 회사에서 직접 데려온 주치의라고 요양장소도 추천해주긴 하네...빌어먹을 자식들.
이런 두통얻을라고 그딴 생고생을 다하며 회사를 살리고도 이런 엿같은 주치의만 딸랑 소개시키면 다야?
개자식들...나가 뒈지라지...
©issess / build 212
Comment : 2
광덕이 | 선추선독! 2016/06/22 15:44:31
berryberry | 감상평이...나인다... 2016/06/23 0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