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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신동집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분석


1. 1연 1행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이 오렌지를 가져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즉 오렌지 오타쿠라는 소리다. 그 다음 두 행에서는 오렌지는 고정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4행에서는 오렌지가 자신을 본다고 생각한다니... 화자는 중증 오렌지 오타쿠임이 틀림없다.
2. 2연에서는 오렌지 껍질을 벗기고 싶은데 그 마음을 못내고 있다. 1연에서 오렌지는 고정되어 있었다고 화자가 증언했으니 오렌지는 과일가게에 놓여있는 오렌지이며 화자는 돈이 없어서 오렌지를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오렌지만이 문제라는 것은 당연히 돈 없는 상태에서 오렌지를 까먹고 싶은 마음을 냈다가는 많이 문제가 된다. 경찰서행이니까. 화자는 “만이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는데, ‘만이’는 ‘많이’의 오타이다. 그게 아니면 오렌지 한 상자의 값이 10,000원이라는 뜻이다.
3. 3연에서 오렌지의 속살을 찹잘하다고 느끼는 데서 시인은 변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그리고 4연에서 오렌지에 대한 집착이 심화되어 오렌지에 손을 댔다가는 흠씬 패주겠다는 화자의 결의를 느낄 수 있다. 화자는 오렌지에 깊게 빠져들고 있다.
5. 5연에서 화자는 지금 배가 고프다. 돈은 없는데 오렌지 오타쿠로서의 본능을 억누를 수 없는 위험한 상태이다. 뱀처럼 또아리튼 시간은 화자가 오렌지를 상대로 자위하는 동안 흘러간 의미없는 시간을 말한다.
6. 마침내 6연, 결국 화자는 참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라면서 화자는 자신이 오렌지를 훔쳐먹은 사실을 졸라 구라를 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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